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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찍고 영혼을 진단하는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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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1건 조회 3,437회 작성일 11-12-28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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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찍고 영혼을 진단하는 의사
블로그 > 엄변호사의 못다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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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찍고 영혼을 진단하는 의사

1.

인도로 간 의사

고등학교 동기회장인 정세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특이한 인물이 있어. 방사선과 김영구 박산데 말이야 매년 인도에 다녀오고 도인처럼 산다는 거야.”

나는 인도라는 말에 불쑥 호기심이 일었다. 매년 인도를 간다면 그는 어쩌면 자신 존재의 본질을 찾으러 가는 것인지도 몰랐다. 문과였던 나는 김영구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었다.

“환경이 어떤데?”

나는 무엇이 그를 인도로 끌어들였을까를 생각하면서 물었다.

“ 재산 여유 있는 유복한 환경출신이야. 아버지가 서울의대교수를 하신 것 같고 김영구도 고등학교 시절 모범생이고 무난히 서울 대 의과대학을 가서 진단방사선과 전문의가 됐다고 그래. 그 다음의 의과대학교수의 길 역시 남들이 보기에는 순탄했고 말이야. 그런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인생의 궤도를 수정했다는 소문이야.”

2.

현대판 출가

토요일 12시경 나는 역삼동에 있는 대체의학연구소 건물로 들어섰다. 자그마한 모텔 같은 건물이었다. 로비에는 피아노곡이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현대의학으로 진단이 나오지 않는 난치병을 주로 취급한다는 곳이다. 김영구 박사는 오층의 연구실에 있었다.


동기인 김영구 박사는 착한 눈빛을 가진 마음 좋아 보이는 중년의 신사였다. 소박해 보이는 그의 연구실은 진찰용 작은 침대 하나만 의학적 분위기를 풍길 뿐 깊숙한 대학의 교수 방 같았다. 특이한 것은 벽에는 식물도감 같은 풀 사진이 가득 붙어 있었다.

“여기서는 약초로 병을 고치나?”

내가 벽에 붙어있는 여러 물질들의 사진을 보면서 물었다.

“정확히 말하면 약초가 아니라 그 속에 들어있는 스피릿, 즉 혼으로 병을 고치지.”

엉뚱한 대답이었다. 의사답지 않은 말이었다.

“약초가 혼이 들어있단 말이야?”

얼떨떨해진 내가 물었다.

“풀들만 아니라 이 세상의 동식물 광물까지 어떤 혼이 들어있어. 그걸 이용해서 사람을 고치는 거야.”

서울의대를 나오고 큰 병원의 부설연구소 교수가 하는 말이니까 듣지 일반인이 하면 터무니없다고 할 말이었다. 그가 서랍에서 팜플렛 한 장을 꺼내 내게 건넸다. 동종요법(homeopathy)을 알려주는 내용이었다. 거기서는 병이란 인간의 영혼이 교란된 것으로 본다고 되어 있어 거기에 맞는 약을 찾아 준다는 것이다. 깊은 영적인 영역을 인정한 의사들만 할 것 같았다. 김영구박사는 한국 최초로 동종요법연구실을 개설하고 환자를 치료하고 있었다.

“진단방사선과 교수님이 영혼으로 사람을 고치게 된 과정을 말해줘.”

내가 수첩을 꺼내 기록할 준비를 하면서 물었다.

“사주를 보면 난 원래 이렇게 두개의 전공을 하게 돼 있어.”

이미 그는 운명론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말한 지난날의 삶은 대충 이랬다. 진단방사선과 의대교수를 십여년간 하던 그는 뭔가 만족스럽지 못했다. 보다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보고 싶은 갈망이 일었다. 탈출구로 그는 벤쿠버로 연수를 지망했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를 먼저 풀어보고 싶었다. 현대판 출가의 시작인지도 몰랐다. 그곳에서 먼저 그는 수많은 책들을 탐독했다. 명상이나 티벳 불교에 관한 것들을 비롯해서 의료 쪽도 약초나 향기 요법등 비 제도권 책들이었다.


3.


스승 샹카라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스코틀랜드의 한 의사가 쓴 동종요법의 책을 보았다.

동식물 광물의 영혼으로 약을 만들어 인간을 고친다는 것이다. 알 수 없는 힘에 끌린 그는 바로 편지를 하고 영국으로 갔다. 젊어서 임상경험으로 쓴맛 단맛을 다 본 저자인 노 의사는 자기 집 리빙룸에 동종요법진료실을 차려놓고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었다. 환자들과 오랫동안 편안히 얘기를 하고 약을 주었다. 의사라기보다는 차라리 현자내지 도인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의 진단방사선과는 철저한 물질의 세계에 대한 분석인데 그 노 의사는 물질이 아닌 세계에 들어가 있었다. 노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고 빈 시간에는 악기를 다루었다. 그는 순간 바로 이거다 하고 생각했다. 그는 다시 그런 치료법의 달인인 샹카라라는 인물을 소개받고 인도로 가게 됐다.

김 박사는 인도 뭄바이에 있는 샹카라를 찾아갔다. 샹카라는 신비한 인물이었다. 샹카라는 영국 미국 독일 등 전 세계의 엘리트의사들을 오게 해서 그들 앞에서 직접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걸 적나라하게 보이면서 가르쳤다. 쟁쟁한 세계적 의사들 중에 김영구 박사도 제자가 되어 공부했다. 샹카라는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겉만 보지 말고 인간의 무의식 그리고 영혼의 존재까지 보고 약을 써야 한다고 했다. 샹카라는 환자의 흘리는 땀이나 대 소변 같은 생리적 현상은 물론 얼떨결에 하는 제스츄어를 보고 에너지의 충만 상태를 감지했다. 환자의 꿈 얘기를 듣고 무의식의 상태를 파악했다. 샹카라는 뛰어난 직관력으로 환자의 영혼의 본질까지 들어가기도 했다.

김박사는 월경통을 호소하며 찾아온 인도인 여대생의 치료과정을 본 적이 있었다. 다른 어느 현대식 병원에서도 고치지 못했다는 환자가 마지막으로 샹카라에게 온 것이다. 샹카라는 그 여대생의 무의식속에 있던 열등감이 육체적으로 생리통으로 나타났다고 진단하고 개 젖의 영혼을 뽑아 만든 약을 그녀에게 먹였다. 바로 그 여대생의 생리통이 없어지고 몇 달 후에는 열등감마저 사라졌다. 샹카라의 이론은 특이했다. 무의식속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환자에게는 비슷한 걸 가진 개 젖의 영혼이 효험이 있다는 것이다.

샹카라는 깊은 무의식속에 쥐의 영혼을 가진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런 사람의 꿈은 어딘가 더럽고 낯선 어두운 장소를 헤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은 햄버거 같은 걸 탐욕스럽게 먹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샹카라는 그런 사람에게는 쥐의 꼬리에서 채취한 피의 영혼을 뽑아 만든 약을 먹이면 완쾌된다고 했다. 샹카라는 강박관념과 스트레스가 고혈압이나 심장병이 되어 나타나는 지도급인사가 많다고 했다.

샹카라는 그런 사람의 무의식의 세계 속에는 왕의 혼이 깃 들여 있다고 했다. 샹카라는 그런 사람들에게는 광물인 금을 희석해서 거기서 나오는 영혼을 빼서 복용시키면 인간 자체가 너그러워지고 그 자신의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당뇨 등의 육체적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도 막을 수 있음은 물론이라는 것이다. 샹카라는 한번은 자기를 찾아온 환자의 영혼 속에서 고릴라의 혼을 발견했다. 그는 동물원에 부탁해서 고릴라의 젖을 구해 희석시킨 약을 복용시켜 완치시켰다고 했다. 나는 그런 말들을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없었다. 사실 매일 보는 성경 속에서도 기적 같은 치유장면을 본다. 예수는 자신의 침으로 반죽한 진흙을 맹인의 눈에 발라 고쳤다. 그의 몸에서 나오는 에너지로 십 여 년 간 하혈을 하던 여인을 단숨에 완쾌시켰다. 사도바울의 수건 한 장에서 나오는 기운으로 사람들의 병이 낫기도 했다. 현대에도 하늘에서 성령이 내려와 직접 여러 사람을 치유한 얘기들이 오가고 있었다.

4.

방울뱀과 백합의 영혼


“실제로 환자를 보고 고친 경험담을 말해봐.”

내가 부탁했다. 완치된 환자 자체가 명확한 증거다. 김 박사는 기억을 더듬으면서 두 명의 환자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김영구 박사의 진료실로 다섯 살 먹은 아이가 들어섰다. 아이가 피가 섞인 오줌이 나오고 온몸이 조금만 자극이 와도 멍이 들었다. 대학병원에서는 그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아이의 엄마는 돌아다니다 마지막에 김박사를 찾은 것이다. 김박사는 환자로 온 아이의 무의식의 세계를 열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꼬마는 꿈에 뒤에서 누가 밀어서 절벽에서 자주 떨어지곤 했다. 평상시 아이의 행동도 특이했다. 아이는 활을 가지고 놀기를 좋아했다. 누군가를 쏘는 모습을 보이는 데 아니는 꼭 뒤를 향해 화살을 날리는 시늉을 하곤 했다. 엄마의 얘기도 들었다. 엄마가 그 아이를 임신했을 때 남편을 증오했다고 말했다. 임신한 아내가 몇 푼의 돈을 받기 위해 새벽까지 원고교정을 하고 있으면 그때야 남편은 술에 떡이 된 채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냥 바닥에 널 부러진 채 자고 있는 남편을 본 아내는 순간 살기마저 품은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김 박사는 엄마의 증오가 태아의 무의식속에 저장됐다고 진단했다. 아이가 커가면서 깊은 무의식속에 잠재됐던 증오가 작용을 해서 화살놀이와 꿈이 되고 마침내는 자반증이라는 신체적 증상으로까지 나타난다고 진단했다. 일반의학에서는 추론할 수 없는 영역이었고 스테로이드요법만 쓸 뿐이었다. 김 박사는 방울뱀 독을 썼다. 증오가 무의식속에 저장되어 있다면 그런 영혼이 담겨있는 물질을 써야했다. 방울뱀 독을 연금술 같은 특수비법에 따라 만든 약을 아이에게 복용시켰다. 한 달 후 아이는 피가 섞인 소변부터 증상이 없어졌다. 더 이상 꿈도 화살놀이도 없었다.


그가 완치한 또 다른 환자가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팔을 몹시 흔드는 중학 2학년생이었다. 육체적 이상이 아니었다. 아이는 미운오리새끼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자기가 소외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학교에서도 왕따였다. 아이의 무의식 속에 엄마의 관심을 끌어보려는 요소가 아이의 팔을 몹시 흔들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정신과에서의 치료는 실패였다. 김 박사는 백합의 영혼에 그런 소외감이 존재하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양재동 꽃시장에 가서 백합과의 크로커스를 사서 알코올에 한달쯤 담가놓았다. 이윽고 그는 크로커스의 혼을 빼내 약으로 만들었다. 알콜로 빼낸 백합의 화학적 성분이 아니라 그 영혼을 치료약으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그렇게 만든 약들은 화학적 검사를 해도 백합의 성분이 나오지 않는다. 약을 먹은 환자의 팔 흔들림이 멈추었다.







5.
영혼을 보려는 의사

“환자들이 분명 아파하는데 의사는 진단을 내릴 수 없는 경우가 많아.”

그가 솔직히 말했다. 사실 그랬다. 그래서 속병을 앓은 우리의 부모들은 가슴을 치기도 했나보다.

“고통은 정확히 말한다면 느낌이야.”

수많은 진단경험으로 원로가 된 그의 결론이었다.

“삼십대 의사시절에는 어떤 것도 알고 있는 지식으로만 했었지. 사십대를 지나서 오십대로 오니까 어떤 다른 철학이 생겨. 마음이 병을 일으키기도 하고 자신의 운명도 만들어 내는 거 같아. 사람마다 자기 색안경으로 세상을 보지 그 안경은 벗겨낼 수 없는 거 같아. 그건 무의식의 세계에 있기 때문에 가르쳐 줘도 망상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어.”

이미 그는 과학자를 넘어 종교적인 상당한 경지에 간 듯 했다.

무의식의 세계를 발견한 프로이드는 자신이 마치 대양을 앞에 놓고 보는 바닷가의 소년 같다고 표현했다. 그 이전 세균의 존재를 처음 발견한 의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했다. 김영구 박사는 병의 원인을 따라가다 그 종착역이 무의식 저편의 영혼의 세계를 본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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